성냥갑 아파트 그만!… 재건축 앞다퉈 해외 설계사 모신다
언론기사2026.01.14
주거공간 넘어 자산 성격 강해져
조합원 표 획득 위한 ‘필수 조건’
전 세계 랜드마크 설계한 회사들
압구정 등 핵심 단지 참여 늘어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시공하는 개포우성7차 재건축 단지 래미안 루미원 조감도. 삼성물산은 글로벌 디자인 그룹 아르카디스(ARCADIS)와 협업해 빛의 관문을 형상화한 외관 디자인을 선보였다. 이렇듯 최근 서울 주요 지역의 재개발·재건축 사업지에서 유명 글로벌 건축 설계사의 참여가 늘고 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 제공
최근 시장의 이목이 쏠리는 재개발·재건축 사업지들 사이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유명 해외 건축 설계사의 참여가 이뤄진다는 점이다. 서울 주요 지역의 아파트가 주거 공간을 넘어 상징성을 갖는 자산의 성격이 점차 강해지면서 ‘해외 설계’가 그 기준을 충족시켜줄 조건으로 자리 잡으면서다.

13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최근 서울 주요 지역의 재개발·재건축 사업지에서 유명 글로벌 건축 설계사의 참여가 늘고 있다. 압구정, 반포, 여의도 등 상징성이 크고 재건축 후 큰 폭의 가격 상승이 예상되는 핵심 단지들에선 재개발·재건축 사업 입찰 시 해외 설계 적용이 필수요건이 된 모양새다.

유명 해외 건축 설계사가 참여한 국내 대표 재건축 사업지 조감도. 현대건설 압구정2구역 재건축. 현대건설제공
재개발·재건축 단지 아파트의 외관 설계를 맡은 해외 설계사들은 전 세계에 랜드마크가 되는 건축물을 설계한 이력들로 주목받는다. 대표적으로 세계적인 건축회사인 영국의 헤더윅 스튜디오는 지난해 9월 현대건설이 수주한 서울 강남구 압구정2구역의 재건축 설계를 맡았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대교아파트는 정비업계에선 최초로 국제 설계 공모를 진행해 헤더윅 스튜디오를 설계업체로 선정했다. 헤더윅 스튜디오는 뉴욕 맨해튼의 베슬, 일본 도쿄의 아자부다이 힐스 등을 설계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유명 해외 건축 설계사가 참여한 국내 대표 재개발 사업지 조감도. 삼성물산 건설부문 한남4구역 재개발. 삼성물산 건설부문 제공
지난해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수주한 서울 용산구 한남4구역 재개발 사업지(래미안 글로우 힐즈 한남)도 독특한 외관으로 눈길을 끈다. 층별로 회전하는 듯한 나선형 구조가 적용된 이 단지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본사를 둔 글로벌 설계 그룹 유엔스튜디오가 설계를 맡았다. 유엔스튜디오는 독일 메르세데스 벤츠 박물관, 두바이 미래 교통 허브, 싱가포르 복합업무단지 등 굵직한 글로벌 프로젝트를 수행한 경험이 있다.

미국 시카고에 본사를 둔 글로벌 건축설계 그룹 SMDP는 HDC현대산업개발이 수주한 서울 용산구 용산정비창 전면1구역 재개발사업의 설계를 맡았다. 초고층 빌딩과 도심형 복합개발에 특화된 회사로, ‘나인원 한남’ ‘래미안 원베일리’ 등 국내 랜드마크 격의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다. SMDP는 현대건설이 시공하는 서울 강남구 개포주공6·7단지(디에이치 르베르)의 재건축 설계도 맡았다.


건설업계는 “경쟁입찰이 이뤄지거나 상징성이 큰 단지들은 거의 다 해외 설계를 적용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한다. 조합원의 표를 얻어야 하는 상황에서 단지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해외 설계 적용은 필수라는 얘기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다른 단지와 다르게 돋보이고 싶고, 자산가치를 높이고 싶은 욕망이 해외 설계 협업으로 수렴하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이런 움직임이 최근에 생긴 건 아니다. 시공사 간 재개발, 재건축 수주전이 치열해지던 2017년부터 해외 설계사 협업 전략이 조금씩 등장하기 시작했다. 서울시가 2023년 우수 디자인 건축물의 용적률·건폐율 완화 등 인센티브를 강화한 것도 이런 흐름 확산에 한몫을 했다. 이로써 ‘해외 설계’는 2020년대 들어선 없어선 안 될 필수 조건으로 자리 잡았다.

유명 해외 건축 설계사가 참여한 국내 대표 재건축 사업지 조감도. 대우건설 여의도 공작아파트 재건축. 지난해 서울 집값이 큰 폭으로 뛰며 자산으로서 아파트의 상징성이 커지면서 사업지에서 해외 설계 적용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대우건설 제공
지난해 해외 설계 적용이 더욱 부각된 건 서울 집값이 큰 폭으로 뛰며 자산으로서 아파트의 상징성이 커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다른 단지와 구별되는 디자인을 적용함으로써 자산가치를 더욱 키우고자 하는 요구가 커진 것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아파트값은 12월 마지막 주 기준(12월 29일) 누적 8.71% 상승했다. 아직 월간 상승률 기준 누적치가 발표되진 않았으나 한국부동산원이 관련 통계 발표를 시작한 2013년 이후 최대 상승폭일 것으로 예상된다.

상징성이 큰 재개발·재건축 단지들이 시장에 많이 나오면서 이 단지들에 시공사가 몰린 것도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른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건설사들 상황이 좋지 못하다 보니 사업성이 있는 주요 단지에 경쟁이 쏠렸다. 이 과정에서 조합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앞다퉈 해외 설계를 제안하면서 더 부각된 듯하다”고 말했다.

업계 일각에선 해외 설계의 차별화 효과에 의구심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조합원들의 요구사항을 모두 반영하다 보면 제안할 수 있는 설계안이 비슷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해외 설계사들은 외관 디자인만 하고, 내부 설계는 국내 건축사가 담당하는 만큼 차별화되는 부분이 크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Made in 해외’라는 이름표를 위해 수백억을 들이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그럼에도 해외 설계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의견에 업계 안팎의 무게가 실린다. 천편일률적인 성냥갑 모양의 아파트가 서울의 도시경관을 해칠뿐더러 재건축·재개발 조합원 개인의 선택이기 때문에 비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아파트의 상징성이 큰 우리나라 특성상, 해외 설계사의 새로운 시각을 적용한 아파트도 랜드마크가 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최원철 한양대 부동산융합대학원 교수는 “도시경관이 멋있어야 외국인 관광객들도 찾아와 보지 않겠나”라며 “다 똑같은 성냥갑만 늘어서 있는 것보다 해외 설계를 도입한 다양한 외관 디자인이 많아지는 건 긍정적인 일”이라고 강조했다.
성냥갑 아파트 그만!… 재건축 앞다퉈 해외 설계사 모신다 | 셈셈 - 부동산 계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