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증여’, 상속·유류분 소송 불씨로…계약·세무 절차 남겨야 [박상길의 부동산톡]
언론기사2025.09.07
한 시민이 도심 아파트 밀집 지역을 바라보고 있다.[연합뉴스]

가족 간 돈거래나 재산 이전은 명백한 증여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막상 소송으로 가면 법원은 전혀 다른 판단을 내립니다. 어떤 이유 때문일까요?

법도 종합법률사무소의 엄정숙 변호사가 실제 대리했던 효심 깊은 장남의 사연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아버지가 사망한 후, 딸들이 오빠를 상대로 유류분 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딸들은 “오빠가 아버지로부터 증여받은 10억원짜리 아파트도 유류분 산정에 포함돼야 한다”며 그 일부를 반환하라고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습니다. 장남은 몇 년 전 아버지에게 5억원을 송금했고, 바로 그 무렵 아버지가 10억원짜리 아파트를 구입해 아들 명의로 등기했던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보면 아들이 아버지에게 돈을 드리고, 아버지가 그 돈을 보태서 아파트를 사서 아들에게 증여한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문제는 이를 입증하는 일입니다. 엄 변호사는 아들이 아버지에게 5억원을 이체한 기록은 명확했지만 그 돈이 아파트 구입에 직접 사용되었다는 연결고리를 증명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계좌에는 여러 자금이 오가는 상황이었고, 아들이 준 돈과 아파트 구입 자금을 명확히 연결할 객관적 증거가 부족했다고 합니다.

법원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5억원을 이체한 사실은 맞지만 그 돈이 아파트 매입에 직접 쓰였다는 증거가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아버지가 그 돈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고, 별도 자금으로 아파트를 구입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장남의 주장은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위 사례와 반대되는 사례도 있습니다. 엄 변호사가 딸들을 대리해 오빠를 상대로 유류분 소송을 진행한 경우입니다. 딸들은 “오빠 명의로 된 그 토지도 사실은 아버지가 증여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문제의 토지는 오빠가 고등학생이던 시절에 매입된 것이었습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오빠가 몇억 원짜리 토지를 혼자 힘으로 구입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해 보였다고 합니다. 토지 매입 당시 오빠의 나이는 17세였고, 당연히 경제활동을 할 나이가 아니었고 매입 자금도 모두 아버지 계좌에서 나갔기 때문이다.

엄 변호사는 이런 정황을 근거로 “이 토지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증여한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그러면서 미성년자인 아들이 독립적으로 부동산을 매입할 경제적 능력이 없었다는 점, 매입 자금이 모두 아버지로부터 나왔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상대방은 “당시 아들이 받은 장학금이나 용돈을 모아뒀을 수도 있고, 아버지로부터 대출을 받았을 수도 있다”며 반박했다고 합니다. 등기부에는 아들이 소유자로 명시돼 있었고, 별도의 증여계약서나 증여세 신고 기록도 없었습니다.

법원은 “고등학생이 부동산을 소유하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사실만으로는 증여를 추정할 수 없다”며 “등기부상 소유자로 기재된 이상, 그가 적법한 소유자로 추정된다”고 밝혔습니다. 엄 변호사의 입증이 실패로 돌아간 것입니다.

부동산 사건에서는 등기부에 기재된 권리관계가 법률상 강력하게 추정됩니다. 등기부상 소유자는 법적으로 진짜 소유자로 인정받고, 이를 뒤집기 위해서는 단순한 의혹이나 정황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등기부의 추정을 깨뜨릴 만큼 확실한 자료가 필요합니다.

부동산 증여는 사랑의 표현이 아니라 법적 행위입니다. 진정으로 가족을 위한다면, 감정에 기대지 말고 객관적 증거를 남겨야 합니다. 증여계약서를 작성하고, 자금 출처를 명확히 하고, 세무 신고까지 철저히 해둬야 합니다. 그래야만 가족 간의 신뢰도 지키고, 재산도 지킬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