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기 신도시’ 속도전? 현장선 “헐값 보상 못 참아” 땅주인 앞에 로펌들 줄선다
언론기사2025.09.23
정부는 공급 늘린다지만 곳곳에서 토지 보상 갈등
“공정한 중재 필요”
정부가 3기 신도시 사업 속도를 높여 주택 공급을 확대하겠다고 밝혔지만, 토지 보상 등을 둘러싼 주민 갈등으로 인해 기대하는 효과를 보지 못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주택공급 확대 방안을 발표한 지난 7일 경기 고양시 3기 신도시 고양창릉지구 모습./뉴시스
3기 신도시로 지정된 개발 지구 중 가장 규모가 큰 광명·시흥지구에 거주하는 김모(72)씨는 최근 한 법무법인에서 소포를 받았다. 소포에는 법무법인이 A4 용지로 인쇄한 편지가 들어 있었다. 편지에는 “최근 선례를 봤을 때 (토지 소유주가) 턱없이 부족한 보상금으로 억울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면서 “여러분 눈앞에 닥칠 문제와 대응 방안에 대해 안내해 주겠다”고 써 있었다.

토지 수용 과정에서 소송을 통해 토지 보상액을 높일 수 있다는 취지였다. 광명·시흥지구 주민 대책위 관계자는 “이미 법무법인들이 통장(統長)들을 앞세워 주민 대책위를 만들면서 10군데가 넘는 대책위가 난립하고 있다”면서 “앞으로 토지 감정 평가와 보상 등 과정에서 갈등이 생기며 사업이 지연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상황”이라고 했다.

광명시흥지구 주민들에게 법무법인이 소개 책자 등이 담긴 소포를 보냈다. 이 안에는 토지 수용 과정에서 소송을 통해 토지 보상액을 높일 수 있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광명시흥지구 주민 제보
정부가 9·7 주택 공급 대책을 발표하며 신도시 등 공공 택지 사업 속도를 끌어올려 기간을 2년 이상 단축하겠다고 했지만, 현장에서는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사업 속도를 높이기 위해 토지 보상 협조 장려금을 지급하고 퇴거 불응 대상자를 제재하는 등의 방안을 내놨지만 큰 효과가 없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전 재산이 걸린 주민들은 정부 보상안에 만족하지 못하면 버틸 수밖에 없다. 특히 현장 조사를 거부하는 방식이나 법적 절차를 동원하면 전체 사업 지연이 불가피하다. 한 3기 신도시 지역 거주민은 “돈 수억원이 왔다 갔다 하는데 1~2년 빨리 받겠다고 헐값 보상에 협조할 사람이 어디 있겠냐”고 했다.

비슷한 이유로 부동산 개발이 밀리는 사례는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삼성전자 입주가 예정돼 있는 용인시 첨단 시스템 반도체 국가산단에서는 지난달부터 토지 감정이 시작됐어야 하지만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다. 한 주민 대책위가 감정평가사 추천을 위한 주민 과반수 이상 동의를 받아 왔는데, 또 다른 대책위에서 “동의서의 진위를 알 수 없으니 전수 조사를 해야 한다”며 갈등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대책위 관계자는 “LH는 주민 합의가 선행돼야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이해관계가 엇갈려 중재 없이는 진척이 어렵다”며 “대책위마다 ‘보상을 더 잘 받아주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주민과 LH 간 보상 갈등도 심화될 것”이라고 했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이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부동산 주택공급 확대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연합뉴스
3기 신도시 개발을 둘러싼 소송전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윤종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입수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 내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22년부터 이달 초까지 3기 신도시에서 토지 수용과 관련해 벌어진 소송은 1601건으로 나타났다. 소송 가액은 4725억원에 달했으며, 이 중 개인이나 기업이 보상액을 늘려달라고 요구한 사건이 10건 중 6건(61%)을 차지했다. 대부분 지역 주민들이 토지 보상에 만족하지 못했거나 기업이 이전 부지를 찾지 못해 소송으로 번진 것이다.

토지 보상과 관련된 소송전이 정부가 제시한 ‘3기 신도시 속도전’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보이는 만큼, 전문가들은 갈등 해소를 위해 주민들로 구성된 공식 협의체를 만들고, 개발 대상이 될 토지를 사전에 마련해 두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선주 경기대 부동산자산관리학과 교수는 “LH 토지은행을 통해 미리 개발 대상 토지의 갈등 요소를 해소해둔 뒤 개발 승인 이후 속도감 있게 사업을 추진하는 형태로 가야지, 그렇지 않으면 갈등으로 인한 비용과 사업 기간이 늘어나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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