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내 4만3000가구 공급’ 공언했던 공공재개발, 첫 삽도 못떴다
언론기사・2025.09.30
이달 중순 서울 종로구 숭인동 1169구역에 붙은 공공재개발 반대 현수막/김휘원 기자이달 중순 찾은 서울 종로구 숭인1169구역 재개발 추진위원회 사무실 주변은 ‘공공 개발 반대’ ‘LH 국민감사 청구’ 등의 내용을 담은 현수막과 전단지들로 어수선했다. 정부는 2021년 이 지역 낡은 다세대 주택과 상가들을 공공 주도로 재개발해 약 410가구 규모 아파트 단지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계획을 내놨지만, 주민간 갈등으로 아직 아무런 진척이 없다. 재개발 찬성파는 “주거 환경 개선이 시급하다”는 입장인 반면, “임대주택으로 다 가져가면 남는 게 없다”며 반발하는 사람도 많다. 작년 9월 주민 요청으로 종로구청이 서울시에 사업 취소를 요청했지만 LH 요청으로 보류됐다. 이곳에서 50년 넘게 살았다는 A(72)씨는 “반대하는 주민이 30%는 되는데, 서울 한복판 역세권 땅에서 왜 공공 개발을 고집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2020년 6월 도입된 공공재개발 사업이 5년 넘는 기간동안 진척없이 표류하고 있다. 장기간 정체된 민간 재개발 사업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나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참여하고 각종 인센티브를 줘 주택 공급을 촉진하자는 취지였지만, 과도한 공공 기여 요구에 따른 주민 반발 때문에 정상적으로 진행되는 사업장은 찾아보기 힘들다. 정부는 5년 내 착공을 공언했지만, 착공은커녕, 한 곳을 제외하곤 인허가 절차도 못 마쳤다. 전문가들은 “서울 도심에서 공공 주도로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며 “현 정부도 지나치게 공공성만 강조해서는 주택 공급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한다.
◇공염불 된 ”5년내 착공”
국토교통부는 2021년 1월 공공재개발 1차 사업지 24곳을 발표하면서 “5년 안에 착공해 총 34곳에서 4만3000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4만3000가구는 부동산 호황기 서울의 1년치 입주 물량에 맞먹는다. 게다가 입지도 대부분 도심 역세권이어서 당시 전문가들은 “제대로 공급만 된다면 부동산 시장 안정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5년 가까이 지난 현재까지 공공재개발 사업지 34곳 중 사업시행인가를 받은 곳은 동대문구 신설1구역 뿐이다. 16곳은 첫 행정 절차인 정비구역 지정조차 완료되지 않았다.
사업이 지지부진한 가장 큰 이유는 주민 간 갈등이다. 특히 정부가 참여를 독려하고자 1차 사업 신청에서 주민 동의율을 10%(2차는 30%)로 낮게 설정했던 것이 발목을 잡고 있다. 충분한 의견 수렴 없이 사업을 시작했다가 추진 과정에서 반대 의견에 부딪히며 파행을 겪는 것이다. 동작구 흑석 2구역은 시공사 선정까지 마쳤음에도 반대 주민들이 지난달 서울행정법원에 인허가 처분을 무효화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하면서 사업이 중단됐다. 성동구 금호23구역, 동작구 본동 등도 찬성파와 반대파가 극심하게 대립하고 있다. 주민 반대가 30%를 넘을 시 공공재개발 구역 해제 요청이 가능하기 때문에 상당수 구역의 사업이 백지화될 가능성도 있다.
◇”공공 기여 과도해 사업성 저해”
주민들이 공공재개발에 반대하는 가장 큰 명분은 ‘사업성 부족’이다. 제도 도입 당시 정부는 “민간 재개발보다 10~30%포인트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겠다”고 공언했다. 용적률(토지 면적 대비 층별 건축 면적 합계의 비율)을 법적 상한의 1.2배로 높이고 분양가 상한제도 면제해주면 가능하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늘어난 용적률의 최대 50%를 임대주택으로 요구하는데다, 순수 민간 사업만큼 분양가를 높게 받기도 어려워 실익이 없다는 것이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입지도 좋기 때문에 수익성만 확보됐다면 건설사가 주민들을 설득해서라도 사업을 끌고 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공공재개발 확대를 위해 2023년부터 사업지 모집을 수시공모제로 바꿨지만, 새로 선정된 후보지는 서울 도봉구 창동470구역 한 곳뿐이다. 최근 9.7 에서도 사업성을 높이기 위해 용적률을 법정 상한의 1.3배까지 높여주기로 했지만 공공 기여는 건드리지 않고 있어 큰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은 “토지주는 이익을 극대화하고 싶어하는 반면, LH 입장에선 최대한 분양가를 낮추고 공공임대를 많이 넣어야 성과를 인정받을 수 있다”며 “이런 이해상충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공공 주도의 도심 주택 공급은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