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이나 수원이나 같은 규제... “1300만 국민을 투기꾼으로 몰아”
언론기사2025.10.17
[News&View]
토허제 대폭 확대
사실상 거래 통제
‘文정부 시즌2’ 우려
16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부동산 중개 업소에 매물 정보가 붙어있다. 20일부터 서울 전체와 경기도 12개 시·구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돼 전세 끼고 집을 사는 갭 투자가 불가능해지면서 규제 전에 아파트를 매매하려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다. /장경식 기자
이재명 정부가 내놓은 세 번째 부동산 대책인 ‘10·15 대책’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이번 대책은 서울 강남 3구와 용산에 국한됐던 대출·세금 규제를 서울 전역과 경기 지역 12개 지역으로 확대하는 초강력 방안을 담았다. 규제 대상 지역 인구만 약 1300만명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대책이 사실상의 ‘거래 통제’라고 말한다. 규제 지역으로 묶이면 대출 한도가 급감해 현금 부자가 아니면 주택 매입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기존엔 강남 3구와 용산이 아닌 지역에선 집값의 70%까지(최대 6억원) 대출을 받아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었지만, 이젠 그런 방식이 어려워졌다.

그래픽=김성규
여기에 토지거래허가구역이 되면서 ‘실거주 의무’가 부과된다. 여윳돈이 부족한 30~40대 실수요자들이 전세 끼고 집을 매입(갭투자)한 뒤 자산을 모아 나중에 입주하던 ‘내 집 마련 사다리’가 원천 봉쇄되는 셈이다. 결과적으로 현금 동원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모든 주택 수요는 시장에서 밀려나게 됐다. 특히 광범위한 지역을 토지거래허가제로 묶어 갭투자를 차단한 이번 대책이 ‘전세 공급 금지법’으로 작동할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전세 끼고 집을 사서 임대 물량을 공급하던 통로가 완전히 차단돼 전세 매물이 씨가 마를 것이라는 얘기다.

부작용은 불 보듯 뻔한데, 정작 ‘집값 억제’라는 목표마저 달성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후속 공급 방안이 없기 때문이다. 외국계 금융사인 노무라와 시티그룹은 대책 발표 직후 보고서 등을 통해 “효과적인 주택 공급 정책이 부재한 구조적 문제 탓에 주택 가격 상승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노무라), “단기적 안정 효과는 있을 수 있으나, 향후 수도권 집값은 구조적 요인으로 인해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시티)이라고 전망했다.

강남이나 수원이나 같은 규제… “현금 부자들 강남 쏠림만 가속화”
전문가들은 이번 대책이 결국 ‘현금 부자들의 리그’를 공고히 하고, 주거 약자의 전월세 부담만 가중시킬 것이라고 지적한다. 30번 가까운 대책을 쏟아내고도 집값을 잡지 못했던 문재인 정부와 차별화하려던 초강력 대책이 ‘문재인 정부 시즌2’를 앞당기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가 15일 부동산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을 확정·발표했다. 이날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뉴스1
이창무 한양대 교수는 “출구 없는 전방위 규제로 수도권 부동산 시장이 올스톱될 것”이라며 “경기도 수원이나 광명이 강남·용산과 동일한 규제를 적용받게 됐으니 역설적으로 현금 부자들의 강남 쏠림 현상은 심화될 것”이라고 했다.

◇공급 외면한 정부, 증세 카드 만지작

정부는 정작 민간 공급 활성화보다 증세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이상경 국토부 1차관은 16일 라디오에 출연해 “부동산에 몰리는 자금을 생산적으로 돌리기 위해 어떤 식으로든 보유세를 포함한 세제 개편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고 있다”고 했다. 구윤철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도 부동산 세제 ‘합리화’ 또는 ‘정상화’라는 표현으로 사실상의 증세를 예고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시절 “세금으로 집값을 잡지 않겠다”고 했지만 정권이 출범하고 6개월도 지나지 않아 입장이 바뀐 것이다. 정수연 제주대 교수는 “보유세가 높아지면 집주인은 세금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임대료를 높일 수밖에 없다”며 “결국엔 주거 약자인 세입자가 보유세 부담을 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과거 문재인 정부도 종합부동산세(종부세) 부담이 임차인에게 전가돼 전셋값이 치솟자, 2020년 ‘임대차 2법’을 도입해 임대료 인상률을 5%로 묶었다. 그러나 이 정책이 되레 전세 매물을 시장에서 사라지게 만들어 전셋값 급등을 부채질한 전례가 있다. 손재영 건국대 교수는 “과거 정부에서 이미 실패했던 정책들을 되풀이하는 모습이 안타깝다”며 “극소수 부자를 겨냥한 규제가 결국에는 주거 약자인 서민과 임차인들의 고통을 키우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갑작스러운 규제에 시장 혼란, 부작용 속출

규제 발표 단 하루 만에 시장에서는 이미 부작용과 혼란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이번 규제에서 서울 전역이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되면서 가장 큰 혼란이 발생한 곳은 재건축 추진 단지들이다. 문제는 규제 발표 전에 매매 거래를 시작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문제가 되는 곳이 재건축 단지가 많으면서 토지거래허가구역이었던 목동이다.

목동의 한 재건축 예정 아파트에 거주하던 직장인 A(38)씨는 잠실로 이사 가기 위해 이달 초 기존 집 매도 약정서를 쓰고 새 집 계약금으로 3억원을 보냈다. 그런데 목동이 속한 양천구가 16일부터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되면서 계약금을 날릴 위기에 처했다. A씨는 구청 허가를 신청한 상태다. 최종 허가를 받은 후에야 정식 계약서를 작성할 수 있는데, 그 전에 이 동네가 덜컥 투기과열지구가 되면서 재건축 조합원 지위 양도가 금지된 것이다. 약정서는 계약서로 인정받지 못하게 돼 매도 계약 자체가 어그러지게 된 것이다. A씨와 비슷한 피해 사례가 속출하며 지난 15일 목동의 공인중개사 10여 명이 구청을 항의 방문하기도 했다.

부동산 대출규제 강화 첫날인 16일 오전 서울 시내의 한 은행에서 시민들이 대출 상담을 받고 있다./뉴스1
목동 재건축 조합원들은 “사실상 계약서 역할을 했던 약정서를 투기과열지구 지정 전에 작성한 경우는 예외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양천구청은 “국토부 지침을 기다리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민원을 종합해 논의 중”이라는 원론적 답변만 내놓고 있다. 목동과 같은 상황인 여의도에서도 유사한 피해 사례가 잇따르며 구청에 문의가 몰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일선 현장의 행정 마비와 혼란을 방치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전문가들은 조합원 지위 승계를 금지하는 규제 자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이다. 양지영 신한투자증권 주거용부동산팀장은 “팔 사람은 자유롭게 팔고 나갈 수 있어야 재건축·재개발을 원하는 사람 중심으로 조합이 구성되면서 사업 속도도 빨라지게 된다”며 “과도한 규제로 인해 퇴로가 막히면 궁극적으로 서울 도심 주택 공급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번 대책을 발표하면서 ‘풍선 효과 차단을 위한 초광역 규제를 도입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런 의도와 달리 이미 빈틈이 나타나고 있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이번 규제 지역에서 제외된 화성 동탄신도시와 인천 송도, 경기 구리시, 광주시, 안양 만안구 등을 대표적인 ‘규제 혜택 지역’으로 꼽는다. 동탄신도시의 한 공인중개사는 “이미 4억~5억원대 갭투자를 중심으로 매물이 있는지 문의하는 전화가 전국에서 몰려오고 있다”고 했다.

매수자들에게 인기가 많던 지역에는 19일까지 거래 쏠림 현상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이 20일부터 지정 예고되면서 그 전에 거래하려는 막차 수요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5일장이 섰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서울 성동구에서 영업 중인 공인중개사는 “규제가 발표된 15일부터 신축 아파트 중심으로 갭투자 매도·매수 문의가 급증했다”면서 “이전에는 집을 보러 가는 도중에도 매도자가 가격을 1억원씩 올리며 배짱을 부렸는데, 규제 발표 후에는 매도자가 가격을 내려서라도 빠르게 팔고 싶다고 할 정도로 규제에 쫓기는 모습”이라고 했다.

☞규제 지역

집값이 과열되거나 투기가 성행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는 지역에 적용하는 패키지형 규제. 조정대상지역, 투기과열지구, 투기지역의 3가지다. 지정되면 대출, 세제, 청약, 재건축·재개발 등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10가지 넘는 규제가 동시에 적용된다.

☞토지거래허가구역

부동산 투기를 방지하기 위해 광역지자체장 또는 국토교통부 장관이 설정하는 구역. 지정되면 주택을 매수할 때 구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주택 매수 후 2년간 의무적으로 거주해야 하기 때문에 전세 끼고 집을 사는 ‘갭 투자’가 금지되는 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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