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 없는 규제, 부동산 풍선만 키웠다
언론기사2025.11.07
진퇴양난 10·15 부동산 대책
6일 오후 서울 남산타워에서 시민들이 아파트가 빽빽하게 들어선 도심을 바라보고 있다. 지난달 15일 서울 전역과 과천·성남 등 경기도 12개 시·구를 규제지역으로 묶는 초고강도 부동산 규제 방안이 발표되면서, 서울 아파트값은 최근 2주 연속 상승세가 둔화됐다. 다만 규제를 비켜간 구리, 동탄 등 경기 일부 지역은 이번 주 아파트값 상승률이 일주일 새 전주 대비 2~3배로 확대됐다./박성원 기자
앞뒤 안 맞는 부동산 정책과 그로 인한 시장 신뢰 상실이 맞물리면서, 부동산 시장에서 부작용이 동시다발로 터져 나오고 있다. 공급을 늘리겠다면서도 사실상 재건축을 어렵게 하고, 서민 주거 부담을 줄이겠다면서 전세 씨를 말리는 정책 엇박자로 인해 시장의 왜곡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6일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주간 아파트 동향에 따르면, 이번 주 경기도 구리와 동탄을 포함한 화성 아파트값 상승률이 전주 대비 2~3배 폭등했다. 10·15 대책 때 ‘아예 풍선효과를 차단하겠다’며 서울 및 경기 12개 시·구를 규제지역으로 묶는 초광역 규제에 나섰지만, 이를 비껴난 지역에서 풍선효과가 본격화된 것이다.

초광역 규제는 역설적으로 서울 강남 쏠림 현상을 심화시키고 있다. 대책 발표 후 2주 동안 서울 전체에서 최고가 거래는 35% 감소했지만 강남·서초·송파를 아우르는 강남 3구에서는 최고가 거래가 61.2% 급증했다. 서울 강북과 경기도까지 묶은 규제가 되레 강남을 돋보이게 한 결과다. 재건축 규제 완화 같은 현실적인 방안은 외면하고 공급과 거래를 옥죄는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이 비규제 지역과 인기 지역에 대한 매수세를 촉발한 것이다.

가장 큰 피해는 세입자에게 전가되고 있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한 주 만에 0.15% 오르며 1년 2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투기 수요를 잡겠다며 갭투자를 차단하자 전세 매물의 씨가 마르면서, 세입자 주거비 부담만 키우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

현 정부도 출범 초기엔 ‘공급을 통한 부동산 시장 안정’을 강조했다. 지난 9월엔 공공 개발 확대와 민간 재건축·재개발 활성화로 5년간 수도권에 135만호를 공급하겠다는 대책도 냈다. 하지만 불과 한 달 만에 수요 봉쇄 및 거래 동결로 정책 기조를 급선회하면서 정책 신뢰도를 스스로 무너뜨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이 커진 상황에서 향후 보유세 인상 등 추가 대책이 나와도 부동산 시장 안정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부가 진퇴양난의 상황을 자초한 셈이다.

강북 ‘마이너스피’ 쏟아지는데, 강남은 연일 최고가 경신
경기도 화성시 동탄 아파트 단지 전경 ./ 오종찬 기자
이번 주(3일 기준) 경기도 구리 아파트 매매 가격은 지난달 27일보다 0.52% 올랐다. 전주(0.18%) 대비 거의 3배에 달하는 상승률이다. 동탄신도시가 포함된 경기도 화성 역시 아파트값 상승률이 지난주 0.13%에서 이번 주 0.26%로 확대됐다. 이 두 곳은 정부가 ‘10·15 부동산 대책’에서 정한 규제 지역과 인접해 대책 발표 직후부터 아파트 호가가 뛰는 등 과열 징후가 감지됐다. 이 같은 시장 분위기가 공식 통계로 확인된 셈이다. 다만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은 지난주 0.23%에서 이번 주 0.19%로 낮아졌다. 하지만 지난주보다 상승률 둔화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 부동산 시장에선 “규제의 약발이 약해지고 있는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정부는 10·15 대책을 준비하면서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 한강 벨트 등 인기 지역의 집값 급등세가 다른 곳으로 번져 나가는 것을 막겠다며 ‘초광역 규제’를 선택했다. 구리와 동탄은 정부의 계산이 틀렸다는 걸 보여준다. 특히 초광역 규제는 오히려 강남 쏠림을 부추기고 있다.

부동산 빅데이터 서비스 집캅에 따르면,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지난달 15일부터 28일까지 2주간 서울 아파트 최고가 거래 건수는 421건으로 대책 전 2주(645건)에 비해 35% 줄었다. 하지만 강남 3구는 67건에서 108건으로 무려 61.2% 급증했다. 이상우 인베이드투자자문 대표는 “경기도 수원이나 의왕에 강남이나 마용성(마포·용산·성동)과 똑같은 규제를 적용하니 강남 같은 기존 인기 지역으로 수요가 몰리는 건 당연한 결과”라고 했다.

그래픽=백형선
엇박자 정책에 강남 쏠림 심화되고 서민 피해 속출
정부가 10·15 대책에서 서울 전역과 경기 12개 지역을 토지거래허가제로 묶고, 대출 한도를 집값의 40%로 제한한 것은 투기 수요를 잡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정작 그 피해는 세입자와 실수요자에게 돌아가고 있다.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아파트에 사는 직장인 이모(46)씨는 집주인이 ‘전셋값을 2억3000만원 올려달라’고 해 신용 대출을 알아보고 있다. 이미 계약 갱신권을 쓴 이씨는 내년 초 전세 계약이 만료되면 보증금에 대출을 더해 인근 소형 아파트를 살 계획이었다. 하지만 10·15 대책으로 대출 한도가 줄어 전세를 연장할 수밖에 없게 됐다. 그는 “주변에 전세 매물이 씨가 말라 집주인 요구에 응하는 것 말고 달리 방법이 없다”며 “맞벌이라 소득도 충분한데 대출이 안 나와 집을 못 산다는 게 말이 되냐”고 말했다.

이씨의 사례는 대출 규제로 전월세 수요가 늘어나는 현실을 보여준다. 그런데 전세 낀 투자를 차단하는 토지거래허가제까지 더해져 전세 매물은 급감하고 있다. 수급 불일치는 전세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번 주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0.15% 상승하며 지난해 9월 둘째 주(0.17%) 이후 약 1년 2개월 만에 가장 큰 폭의 오름세를 보였다. 투기 수요를 잡겠다던 규제가 세입자 주거비 부담만 키우고 있는 것이다. 노원, 도봉 등 서울 외곽 지역에서는 입주를 앞둔 아파트의 매매 호가(呼價)가 분양가 밑으로 1억원 가까이 떨어지는 ‘마이너스피’ 매물도 쏟아지고 있다. 대출 규제 탓에 입주 잔금 마련이 어려워진 사람들이 급매에 나선 것이다.

대출규제 강화 등의 영향으로 '전세의 월세화'가 가속하는 가운데 올 9월 전국 전월세 거래의 65%를 월세가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 전월세 거래량은 23만745건으로 전월 대비 7.9% 증가했다. 사진은 지난 2일 서울 시내 한 부동산에 붙은 전월세 매물들./연합뉴스
정부 “필사적 공급”… 전문가들 “선언만으론 부족”
정부도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한 근본 해법이 공급이라는 점에는 공감하고 방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국토부는 ‘9·7 공급 대책’ 발표 후속으로 이달 중 주택 공급 본부를 출범할 계획이다. 연내 구체적인 입지와 지역별 공급 물량 등을 공개할 계획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관세 협상보다 부동산 정책이 더 어렵더라”면서 “‘필사적으로’ 주택 공급을 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대통령실이 ‘필사적 공급’을 선언했지만 선언만으론 무너진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고 말한다. 공염불 공급 계획을 되풀이하는 대신 시장이 실제로 체감할 수 있고, 신뢰할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과거 정부도 수많은 공급 대책을 내놨지만 대부분 실효성이 없었다는 걸 다수 국민이 경험을 통해 알고 있으니 9·7 공급 대책 이후 집값이 오히려 급등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새로운 뭔가를 내놓기보다는 기존 사업을 빨리 마무리하고 불필요한 규제를 과감하게 푸는 실행력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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