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단지인데 분양가 1억 차이…할인분양에 입주민 “눈 뜨고 코 베인 꼴”
언론기사・2025.11.23
지난 22일 울산 '뉴시티 에일린의뜰 2차' 아파트 단지 앞에 건설사 할인 분양을 비판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이 단지는 미분양 해소를 위해 할인분양에 나섰지만, 기존 입주자가 낸 분양 가격과 1억원 이상 차이나면서 건설사와 입주자 간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입주민 비상대책위 제공지난 22일 울산의 967가구 규모 아파트 ‘뉴시티 에일린의뜰 2차’ 앞에는 ‘속지 마세요, 계약서 쓰는 순간 호갱님’ ‘할인 분양을 결사반대한다’ 등의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지난해 7월 입주를 시작한 이 아파트 전용 99㎡ 분양가는 최고 7억4000만원이었다. 그런데 대규모 미분양이 이어지자, 건설사에서 갑자기 올해 초부터 할인 분양을 시작해 이를 5억7000만원에 분양하기 시작했다. 전용 84㎡ 초기 분양가가 최고 5억9000만원이었는데, 할인 분양으로 인해 이보다 넓은 전용 99㎡ 분양가가 더 저렴해지는 역전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아파트 입주민 이모 씨는 “건설사는 잔금을 유예해 주는 것일 뿐 할인 분양이 아니라고 하지만, 지금 입주하는 사람들은 기존 입주자보다 1억원 이상 적은 비용을 내고 들어오고 있다”면서 “일찍 입주한 사람들은 눈 뜨고 코 베인 꼴”이라고 했다.
지방 부동산 시장이 침체기를 겪으며 미분양이 속출하자, 할인 분양을 두고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건설 비용이 높아지며 분양가가 높게 책정되고, 지방에서는 미분양이 발생해 아파트를 지어도 수익을 낼 수 없게 되면서 건설사와 시행사는 할인을 해서라도 공사비를 회수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럴수록 먼저 입주한 사람들은 나중에 들어온 사람보다 더 비싸게 아파트를 분양받은 상황이 되면서 건설사와 입주민은 물론, 입주민 간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잇따른 미분양에 곳곳서 할인 분양
지방에서 할인 분양을 하는 아파트는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최근 주택 공급이 급증해 ‘미분양의 무덤’이 된 대구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단지 전면에 ‘1억원 이상 할인 분양’이라는 대형 현수막을 걸었던 대구 서구 ‘반고개역 푸르지오’는 분양가 20% 할인에 발코니 확장, 시스템 에어컨, 붙박이장 등도 무료로 제공한다. 대구 달서구 ‘달서롯데캐슬 센트럴스카이’도 기존 분양가 대비 1억원 수준의 할인 혜택을 주고 있으며 수성구 ‘수성포레스트스위첸’도 최대 20%까지 분양가를 할인하고 있다. 건설사 관계자는 “지방에서는 계약금을 5%로 맞춰주고 옵션을 무료로 제공하는 것이 이미 관행처럼 자리 잡았다”면서 “최근에는 여기에 할인 분양까지 하지 않으면 분양률을 채우기 어려운 현장이 늘어나는 상황”이라고 했다.
할인 분양으로 인한 갈등도 이어지고 있다. 뉴시티 에일린의뜰 2차 아파트 입주민 80여 명은 “할인된 분양가만큼 환불해달라”며 서울과 울산 등을 오가며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전남 광양시 ‘광양 동문디이스트’에서는 할인 분양으로 입주민 간 분양가 차이가 벌어지자 기존 입주민들이 새로 입주하는 주민들의 이사 차량을 막으며 갈등이 확산됐고, 대구 ‘안심 호반써밋 이스텔라’에서도 건설사가 미분양을 해소하려 분양가 85%를 5년 뒤에 납부하는 잔금 유예 등으로 분양가를 내리려 하자 기존 입주민들이 아파트 단지 출입구를 막는 등 반발이 이어지기도 했다. 분양 업계 관계자는 “할인 분양은 일시적인 극약 처방일 뿐, 공사비 상승과 지방 부동산 침체가 계속되는 한 비슷한 갈등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주택 가격 왜곡하고 신뢰 하락 영향
지방 미분양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악성 미분양으로 분류되는 준공 후 미분양은 9월 2만7248가구로, 지난해 동기(1만7262가구) 대비 57.8% 상승했다. 특히 준공 후 미분양 10가구 중 8가구(84.4%)는 지방에 집중돼 있다. 지방에서 미분양을 버티지 못한 건설사들이 할인 분양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전문가들은 할인 분양이 단기적으로는 아파트 미분양을 해소해 공사비를 회수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장기적으로는 주택 가격을 왜곡하고 소비자 신뢰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분석한다. 일각에서는 지방의 인구 유출에도 불구하고 지자체가 주택 공급을 이어가면서 공급 과잉이 심화되며 미분양 사태를 장기화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할인 분양이 늘어나면 건설사는 물론 주택 공급 체계에 리스크가 커지는 만큼, 분양률이 높을수록 금리가 저렴해지는 등 건설사에 인센티브를 주거나 지자체에서 인허가 등을 통해 주택 공급 물량 속도를 조절하는 등 대책 마련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