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받는 비아파트 시장 살리려면 필요한 건 무엇?
언론기사・2025.12.02
지난달 5일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의 한국토지주택공사(LH) 매입임대주택 신축 현장(왼쪽). 대로 건너편에는 2022년 준공한 오피스텔이 할인 분양을 진행하고 있다. 최미랑 기자지난달 3일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 대로변의 한 오피스텔 신축 공사 현장. 올해 7월 공사를 시작한 이 곳은 현재 부지 조성이 한창이었다. 2028년 1월 준공이 완료되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사들인다. LH가 사업자에 먼저 매입약정을 하고 짓는 ‘신축매입임대’ 주택이다. 지하 5층 지상 20층의 오피스텔은 500가구 이상의 청년임대주택으로 내놓는다.
같은 동네에 정확히 맞은편에는 18층짜리 75가구 오피스텔이 할인 분양을 진행하고 있다. 2022년 7월에 준공한 이곳은 아직도 다 팔리지 않았다. 분양대행사 관계자는 “2022년 분양 당시 금리가 오르면서 심각한 미분양 상태였다가 지난해부터 15~20% 할인하며 물량을 해소 중”이라고 했다. 분양 당시 2억3000만원이었던 원룸 매물은 현재 1억9500만원에 나와있다. 지어도 팔리지 않는 비아파트 주택의 현주소다.
전세사기 사태 이후 빌라와 오피스텔 등 비아파트 매매와 임대가 사실상 죽어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서민들의 주거 안정을 위해 비아파트 시장 활성화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질 좋은 임대주택 공급을 늘리는 동시에 전세보증금 안전망을 강화하고 빌라 밀집 지역에 편의시설과 주거 인프라 구성 등이 과제로 꼽힌다.
지난 11월5일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의 한 신축 빌라에 시행사와 시공사 간 공사비 미지급으로 인한 유치권 행사 안내문이 붙어 있다. 최미랑 기자1일 국토교통부 주택통계를 보면 올 들어 연립·다세대·오피스텔 등 비아파트 주택은 인허가와 착공 모두 1년 전보다 큰 폭으로 줄었다. 1~10월 인허가를 받은 비아파트는 2만7877가구로 전년 동기 대비 7.1% 감소했다. 같은 기간 인허가를 받은 아파트가 21만8487가구로 전년 동기보다 1.9% 늘어난 것과 대비된다.
실제 입주를 가늠할 수 있는 준공 기준으로 보면, 비아파트 감소 폭은 더욱 크다. 아파트는 1~10월 준공이 27만613가구로 전년 동기 대비 5.7% 감소했다. 같은 기간 비아파트는 2만4598가구로 전년 대비 29.7% 줄었다.
이같은 ‘비아파트 공급절벽’ 상황에서 정부는 민간이 지은 빌라 또는 오피스텔을 사들여 공공임대하는 ‘신축 매입임대’를 늘리려고 하고 있다. 지난 9·7 공급 대책에서 발표한 서울 주택 공급의 핵심 방안 중 하나다. 향후 5년간 7만 가구를 공급할 계획이다.
문제는 매입임대 공급이 주거취약계층에선 ‘비빌 언덕’으로 환영을 받고 있지만 입주가 ‘로또’에 가까울 정도로 공급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직장인 A씨(27)는 지난해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의 청년매입임대주택에 지원했다가 고배를 마셨다. 지금은 서울 성북구에서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43만원짜리 원룸에 살고 있다. 그는 “같은 가격이면 투룸에 살 수 있고 보증금 떼일 걱정도 없는 매입임대주택에 가고 싶다”면서 “LH와 SH 공고를 매일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LH는 신축 매입약정 방식으로 지난해 3만9000가구를 매입한 데 이어 올해는 연말까지 5만가구 이상 매입하는 게 목표다. 정부도 내년 연말까지 한시적으로 사업자대출 금리를 인하하고 대출 한도를 상향하는 등 주택도시기금 지원도 확대한다고 했다. 다만 이미 지체된 매입임대 주택 공급을 지금 혜택을 확대한다고 해서 갑자기 늘어나기는 물리적으로 어렵다.
물론 비아파트의 신축매입임대를 두고 정부가 주택도시기금으로 너무 비싼 값에 신축 오피스텔 등을 사들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정흔 경실련 토지주택위원장은 “전세사기 사태 이전에 지어 미분양으로 남아도는 비아파트 주택이 많은데 정부가 이처럼 높은 가격에 매입하는 게 타당한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다세대·다가구·오피스텔 등의 거래가 계속 정체되고 아파트와 견주어 ‘열등재’로 남는 것이 서민 주거 품질 향상을 위해서도 좋을 게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정부가 임대주택을 너무 비싼 가격에 사들이지 않도록 상한선은 두어야겠지만, 비아파트 공급이 지금처럼 침체된 때에는 공공임대로 돌파구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신축 매입임대는 사업자 입장에서도 미분양 위험이 없는 좋은 사업이어서 주택 경기 침체로 막힌 공급을 늘리는 데 적합한 정책”이라고 말했다.
공공임대를 늘리는 것 못지않게 민간의 비아파트 시장을 살릴 근본적 대안도 같이 나놔야 한다는 점도 함께 과제로 꼽힌다. 공공임대를 늘리는 데 시간이 걸리는 만큼 전세사기 위험과 비싼 월세, 낮은 주거 품질로 ‘계륵’이 돼버린 민간 비아파트 시장의 취약점부터 고쳐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최 소장은 “임대차 대항력 발생일을 전입신고 익일이 아닌 당일로 시정하는 등 전세사기 안전망을 강화할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빌라 포비아’ 등을 개선하기 위해선 이들 지역에 아파트 단지처럼 주거 편의시설까지 함께 갖추는 ‘큰 그림’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임재만 세종대 교수는 “빌라·오피스텔에 대한 실거주 매매 수요가 사라지고 갭투자 중심으로 비아파트 시장이 재편된 것이 전세사기와 시장 침체가 나타난 핵심”이라면서 “빌라·오피스텔이 밀집한 지역에도 주차장, 공원, 도서관, 놀이터 등 생활 인프라 시설을 배치해 신축 아파트 단지 못지않은 ‘살고 싶은 동네’로 만들려는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9월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새 정부 첫 부동산 주택공급 확대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