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없는 사회’ 만들겠다더니…대통령 ‘의지’는 어디에?[올앳부동산]
언론기사・2025.12.08
전세사기 피해자와 관련 단체 회원들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에 대한 연내 처리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정권이 바뀌면 금방 좋아질 줄 알았는데, 하나도 달라진 게 없어요.”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이재명 정부 출범에 걸었던 기대는 집권 6개월 만에 실망으로 바뀌었다. 대선 공약으로 ‘전세사기 없는 사회’를 약속하고, 국정과제로 전세사기 피해 지원과 가해자 처벌 강화를 위한 법·제도 개선을 제시한 새 정부가 지난 6개월간 기약 없는 ‘희망고문’만 이어간 탓이다. 그사이 전세사기 피해자 인정 비율은 지난해 1월 82%에서 이달 47%로 축소하는 등 정부 지원의 문턱은 오히려 높아졌다.
최근 전세사기 피해구제가 일정 정도 이르지 못하면 정부가 보전해주는 방안 등이 쟁점으로 떠오른 상황에서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와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법무부 등 여러 관계부처 간 이견이 부딪치고 있다. 전세사기 피해자 구제 문제는 형평성 논란을 안고 출발한 만큼 대통령실과 여당 지도부가 각 부처를 조율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적극적 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세사기특별법 개정 ‘가닥 잡기’ 필요한 이유
지난 7월 이정헌 당시 국정기획위원회 경제2분과 기획위원이 1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에서 전세사기 피해자 간담회 사후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더불어민주당 전세사기근절특별위원회는 오는 18일 회의를 열고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의 입법 방향을 대략적으로 정리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는 관계부처인 국정조정실, 기재부, 법무부, 국토부, 금융위 등도 참석해 발의된 법안에 관한 검토 의견을 보고한다. 특위 차원에서 법안을 방향을 가닥 잡기 나선 것이다.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은 현재까지 14건 발의되어 있다. 법안이 다양한 만큼 국회 내부, 특히 정부 부처 간 의견이 서로 엇갈린다.
2023년 5월 전세사기특별법이 제정될 당시, 정부와 여야는 6개월마다 정부 보고를 받아 국회가 보완 입법을 하기로 약속했다. 지난해 8월 일부 개정 이후 현재까지 단순 기한 연장을 제외한 실질적 보완 입법은 이뤄지지 않았다. 특히 올해는 10월 이후 한창민 사회민주당 의원, 윤종오 진보당 의원, 염태영 민주당 의원 등이 피해자 요구를 반영한 개정안을 발했지만 아직 여러 쟁점으로 인해 상임위 상정조차 되지 않아 연내 처리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현재 가장 큰 쟁점은 최소보장 선택제다. 피해자들이 가장 원하는 대책이다. 경매차익, 배당, 변제금 등을 모두 합쳐 회복한 금액이 일정 기준에 미치지 못할 경우 그 차액을 재정으로 보전해 주는 방안이다. 지난달 21일 발의한 염태영 의원 안은 보전 기준으로 보증금의 3분의 1을, 윤종오 의원은 50%를 제시했다.
피해자들이 최소보장 선택제를 원하는 이유는 현행법의 피해 구제에 형평성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특별법 개정안 시행 이후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피해주택을 경·공매 등으로 매입해 경매차익으로 전세사기 피해자의 피해보증금 회복을 지원하고 있다. 문제는 ‘회복의 정도’가 피해자마다 크게 다르다는 데 있다.
염 의원이 국토부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 10월까지 피해자로 결정된 3만4481건 중 LH 피해주택 매입 완료된 건은 10%에도 못 미치는 3344건이었다. 이중 경매차익과 배당금 산정까지 끝난 가구는 450건이고, 이중 보증금을 100% 회수한 사례는 111건(24.7%)에 불과했다. 보증금의 절반도 건지지 못한 사례는 83건(18.4%)이었고, 이 중 보증금의 33%도 돌려받지 못한 경우도 16건(3.5%)이나 됐다. 염 의원과 국토부는 피해회복률이 33% 미만인 피해자의 비중이 올해 3.5%에서 내년 12%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염 의원실은 보증금의 3분의 1까지 보전한다는 기준으로 계산하면 향후 1~2년간 1000억원가량 예산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문제는 형평성 논란이다. 재정을 투입해 전세사기 피해를 구제해야 한다는 시각은 전세사기가 정부 지원과 제도, 관행 등이 얽힌 사회적 재난이라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반면 기재부 등은 전세사기 피해자에 대한 지원 강화가 재정 부담은 물론 다른 사기 사건 피해자와의 형평성 문제와 도덕적 해이, 악용 가능성 등을 우려하며 반대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피해 회복 형평성 문제가 계속 지적이 되다 보니 국토부는 재정 여건이 되면 추가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고 있지만, 재정당국에서는 보다 신중한 입장을 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선구제 후구상” 외치던 대통령은 어디에?
염 의원의 발의안 중 전세사기 배드뱅크(가칭) 도입도 쉽사리 합의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전세사기 배드뱅크란 피해자의 선순위저당채권을 채권금융기관이 매입하고 일정 기간 경매신청을 보류하거나 경매의 유예·정지에 동의할 수 있도록 하자는 대안이다. 공동담보처럼 권리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LH 매입 등 개별 지원으로는 구제에 한계가 있었던 피해자들에게 필요한 대안으로 제시된다.
금융위는 그러나 채권 매입 구조가 불명확하고 도덕적 해이 우려가 있다며 반대하고 있어 논의가 진전되지 않고 있다.
피해자들이 여러 부처간 이견이 오가는 국회 논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가장 아쉬워하는 점은 각 부처 입장을 조율해야 할 대통령실과 여당 지도부의 태도가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는 부분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과거 당대표 시절 “전세사기특별법은 6개월마다 개정하기로 여야 간에 약속한 것” “특별법 개정의 핵심 내용은 ‘선구제 후구상’이어야 한다고 생각” “재정 부담이 약간 있겠지만 국가가 이 정도는 책임져줘야” 등 발언을 내놨다. 집권 후에는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에 관한 발언을 내놓지 않았다.
한 여당 관계자는 “야당 시절에는 ‘선구제 후회수’를 주장하고, 국정기획위원회 단계에선 전세사기 배드뱅크를 언급하며 피해자들에게 희망을 줬으면 이제는 책임지고 수습을 해야하지 않느냐”며 비판했다. 다른 관계자 역시 “전세사기 문제는 각 부처 이해충돌이 강하다보니 대통령실의 결단 없이는 진전이 어렵다”며 정치적 의지의 부재를 지적했다.
현재 국회에는 전세사기 피해 지원과 예방과 관련된 법안이 72건 계류돼 있다. 피해 지원 특별법만 14건이고, 예방을 위한 법안도 58건이나 되지만 처리 속도는 매우 더디다.
한 전세사기 피해자는 “정권만 바뀌면 바로 속도가 붙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지지부진하니 정부에 대한 원망이 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