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 후 내집" 희망 무너졌다…시세보다 비싼데 법원은 "임대인 재량"
언론기사・2025.12.10
임종철 디자이너 /사진=임종철 디자이너청년·신혼부부에게 "임대 후 내 집으로 마련할 수 있다"고 소개된 공공택지 민간임대 아파트가, 실제로는 임대인이 마음대로 분양가를 정할 수 있는 구조라는 점이 법원 판결로 확인됐다. 사모펀드가 사업에 참여한 뒤 분양전환가격이 시세보다 높게 책정된 판교 사례가 대표적이다. 정부가 유도해온 '임대→내집마련' 경로가 제도적으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9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경기 성남시 고등동 판교밸리 제일풍경채 입주민들은 최근 NH투자증권 본사와 금융감독원 앞에서 집회를 열고 "공공택지에 지어진 임대아파트조차 사모펀드가 가격을 좌우하고 있다"며 분양전환 절차에 대한 조사를 요구했다.
이 단지는 청년·신혼부부를 대상으로 민간임대 후 우선분양을 약속하며 공급됐다. 공식 문서에 언급된건 아니지만 분양 당시 시행사 직원들이 "시세보다 70~80% 정도 가격에 분양될 것"이라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다른 민간임대 단지에서도 분양전환가는 통상 시세보다 낮게 책정돼 왔다.
최근 시행사가 제시한 분양전환가격은 12억원대로 인근 아파트 시세가 약 10억원 초반인 점을 감안하면 '저렴한 분양'과는 거리가 멀다. 더구나 이 가격도 공문이나 문자로 안내되지 않고, 입주민이 시행사 사무실을 직접 찾아가야만 개별적으로 제시됐다. 가구별 가격도 서로 달라 '깜깜이 분양'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같은 논란은 법원의 판단으로 또 한 번 커졌다.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은 판교밸리 제일풍경채 입주민 215명이 시행사를 상대로 낸 분양전환가격 확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지난 10월 내렸다. 법원은 "분양전환 가격은 임대인이 결정한다"는 임대차계약서 조항이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분양 홍보 과정에서 이뤄진 구두 안내는 법적 효력이 없고, 감정평가법인의 평가를 근거로 산정된 분양가가 현저히 불합리하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했다. 특히 민간임대주택은 공공임대주택과 달리 분양전환 가격을 제한하는 규정이 없어, 임대인의 재량이 폭넓게 인정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판결은 공공택지에 지어진 민간임대라도 분양가 규제를 적용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사실상 명문화한 것으로 평가된다. 과거 대법원이 공공임대주택의 자의적인 분양가 산정을 문제 삼은 판례와는 다른 결론이다.
판교밸리 제일풍경채는 성남 고등지구 공공주택지구에 조성된 단지다. 사업 초기 디벨로퍼였던 HMG는 임대 시작 후 사모펀드인 메테우스자산운용에 PFV 지분 대부분을 넘겼다. 현재는 NH투자증권이 수탁사로 참여하는 사모펀드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 HMG 시절 가구당 7억~8억원 선에서 논의되던 조기분양 협의는 지분 변경과 함께 중단됐다.
한 임차인은 "공공택지에서 나온 집이니 최소한 공공성이 보장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법원 판단까지 나오면서 사실상 막을 방법이 없다는 걸 확인했다"며 "사모펀드가 가격을 올려도 제도적으로 제어할 장치가 없다"고 호소했다.
올해부터 2030년까지 분양전환 시점을 맞는 분양전환형 민간임대 단지는 전국 49곳, 약 3만9000여가구다. 이들 단지 중 상당수에서도 지분 변경, 감정평가 불투명성, 분양가 논란이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청년·신혼부부의 내집마련 사다리로 설계된 민간임대 제도가 실질적으로는 임대인 재량에 맡겨진 투자 상품으로 변질되고 있다"며 "제도 신뢰 회복을 위한 법·제도 정비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