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레마 빠진 세운4구역…중단과 재설계 갈림길
언론기사2026.01.05
서울 세운4구역 재개발 사업이 중단과 전면 재설계 사이의 중대한 갈림길에 섰다. 이미 건축물 철거를 마치고 착공만 남겨둔 상태에서 사업이 장기간 멈춰 서자, 주민들 사이에서는 재개발이 결국 좌초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세운4구역은 본격적인 공사 착수를 앞두고 있지만, 행정 절차 지연으로 사업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주민들은 "수년간의 행정 절차와 막대한 비용 부담을 감내해 왔는데, 더 이상의 지연은 사업 지속 자체를 위협한다"고 호소한다.

세운4구역 재개발은 20년 가까이 표류해 왔다. 주민들에 따르면 국가유산청의 문화재 심의 과정에서만 사업 인가를 받는 데 9년이 걸렸다. 그 사이 규제는 강화됐고, 사업성은 급격히 악화했다.

주민 측은 국가유산청이 세계유산영향평가를 이유로 사업을 계속 지연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서울시장 교체 등으로 도시정책 기조가 수차례 바뀌면서, 이미 확정됐던 계획마저 번번이 흔들리는 구조가 반복됐다는 지적이다.

주민들은 현재 사업 여건이 임계점을 넘어섰다고 보고 있다. 금융 비용과 물가 상승으로 사업성은 급속히 나빠졌고, 장기 표류로 인한 생활 불안과 재산권 침해 역시 한계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될 경우 사업은 회복이 어려운 수준으로 좌초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주민 측은 문화재청의 일방적인 행정 결정이 헌법이 보장한 재산권과 신뢰보호 원칙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 제기까지 검토하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문화재 규제가 법률적 근거가 미약하고, 일관된 기준도 없이 세운4구역만을 콕 집어 적용돼왔다는 점이다. 세운4구역은 종묘 경관 보호를 이유로 건축 높이와 배치에 지속적인 제약을 받아 왔다. 반면 인접한 세운5구역은 최고 170m, 을지로변 구간은 200m 높이의 건축 허가를 받은 상태다.

이에 세운4구역 주민들은 "같은 종묘 인접 지역임에도 유독 세운4구역만 문제 삼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주장한다. 종묘 경관 보호라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어디까지 허용되고 어디부터 제한되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끝내 제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가유산청의 태도에 대한 불만도 커지고 있다. 주민들은 국가유산청이 2025년 11월 6일 대법원 패소 이후 여론전을 벌이며 사안을 정쟁화하고 있지만, 정작 현실적인 해결책은 내놓지 않고 있다고 비판한다.

특히 법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은 세계유산영향평가를 사실상 유일한 해법처럼 요구하는 데 대해 주민들은 "이는 재개발을 하지 말라는 것과 다름없다"고 주장한다.

사업이 지지부진한 사이 사업성은 돌이키기 어려운 수준으로 나빠졌다. 세운4구역은 전면 철거 방식의 재개발 사업으로, 기존 관리처분계획상 비례율은 103%에 불과하다. 과거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공사)가 사업 참여 당시 제시했던 비례율 219%와 비교하면 큰 격차가 난다. 여기에 최근 몇 년 새 공사비까지 두 배 이상 치솟으면서, 현재 구조로는 사업을 추진할수록 손해가 커지는 상황이라는 게 주민들의 설명이다.

행정은 멈춰 섰다. 주민들은 현재 국가와 관련 공무원 10명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 중이다. 수십 년간 이어진 행정 지연과 기준 없는 규제로 인한 경제적·정신적 피해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는 취지다.

주민들은 정부와의 대립보다는 협의를 요구하고 있다. 정부와 서울시, 주민이 참여하는 3자 협의체를 구성해 종묘 경관 보호와 도심 개발이 공존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을 찾자는 것이다. 건축 높이 조정 등 합리적인 선에서 타협점을 마련하고, 더 이상의 지연 없이 조속히 착공해야 한다는 게 주민들의 요구다.

박상길 기자 sweatsk@dt.co.kr

세운4구역 전경. [세운4구역 주민대표회의 제공]